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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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어둠에 덮이지 않도록

<목소리들>

글 _ 김보년(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2025-04-16

지혜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목소리들>만큼 나에게 제주 4·3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준 영화는 없었다. 임흥순의 <비념>(2013)이나 오멸의 <지슬>(2012)을 본 뒤 역사의 상처를 기억하고 재현하려는 새로운 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 <목소리들>을 보고 난 후에는 내가 몰랐던 제주 4·3을 새롭게 알고 배울 수 있었다. 나처럼 제주 4·3을 몇 줄의 요약된 정보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또는 이 역사를 거의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목소리들>을 추천하고 싶다.



<목소리들>이 알려주는 사실 <목소리들>을 보고 나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제주 4·3은 1948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제주 남로당이 제주도의 경찰서를 4월 3일에 습격한 후, 군과 경찰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제주도로 출동해 이른바 ‘초토화작전’을 개시했으며, 11월에는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이 떨어졌다. 이때 군경과 서북청년단으로 구성된 토벌대는 ‘빨갱이’를 처단한다는 명목으로 수년 동안 민간인을 살해했다. 훗날 공식적으로 기록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의 수는 최소 1만 5000명이 넘으며, 잠정적으로는 3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이 사망자에는 성인 남성은 물론, 여성과 10대 청소년, 심지어 어린이도 포함되어 있다. 국가가 직접 개입한 이 정도 규모의 민간인 학살은 제주 4·3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현재도 제주도에는 특정한 날짜에 희생자들을 위한 제사를 지내는 마을이 있다. 이를테면 표선면 토산리에서는 매년 11월, 147명의 영혼을 기리는 합동 제사를 지낸다. 당시 토벌대는 약 150명 정도 되는 마을 주민들을 끌고 가 차례로 총살한 뒤 시체도 제대로 수습하지 않았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죽은 척을 해서 겨우 살아남았고,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가족이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지금은 관광지로 유명한 함덕리 서우봉의 사례도 있다. 당시 함덕리에는 토벌 대상자의 가족을 격리하는 수용소가 있었는데, 토벌대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 14명을 따로 데리고 간 뒤 일주일 뒤 서우봉에서 살해했고, 시신은 전부 바다에 버렸다. 영화가 주목하는 건 젊은 여성만 따로 데려갔다는 사실과 일주일이라는 시간이다. 남성들은 바로 죽였으면서 여성은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영화가 제시하는 가설은 토벌대가 일주일 동안 여성들을 집단으로 성폭행했으며, 이 범죄를 감추기 위해 모두 죽였다는 것이다.

정부는 2000년에 제정한 ‘4·3 특별법’을 통해 약 1만 5000건이 넘는 피해 신고를 받았다. 이 법에 의하면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희생자’는 사망한 사람, 행방불명된 사람, 형벌을 받은 사람, 그리고 후유 장애를 겪은 사람이다. 이 분류 체계에는 성폭행·추행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목소리들>은 여성이 여성으로서 입은 피해가 제주 4·3의 기록에서 제외되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누가 와도 입을 안 열어.” “그런 일을 당했다는 건 목숨이 끊어져도 말 안 합니다.” 이 말은 당시 상황을 아직도 기억하는 인터뷰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비통한 표정으로, 또는 무표정으로 들려주는 말이다. 감독에 의하면 2000년 당시 제주 4·3의 피해 신고 중 ‘여성 피해’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침묵이 여성들의 기억 방식”이었던 셈이다.

<목소리들>은 제주 4·3 이후 겪어야 했던 여성의 삶에 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까지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로 귀를 기울였다면, 이제는 그 후로도 계속 제주에 살았던 사람들의 끝나지 않은 고통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고통 중 하나는 당사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진행된 결혼이다. 제주 4·3은 며칠, 몇 달 동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최소 6·25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 폭력의 일상화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남편이 없는 젊은 여성은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원하지 않는 조혼(早婚)을 해야 했다. 시대가 1940~1950년대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10대의 나이에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급히 성사된 결혼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제주 4·3 이후 삶을 이어 나가야 했던 여성들의 삶이다. 제주 4·3으로 인한 (공식)사망자의 80%는 남성이며, 살아남은 젊은 남성들은 다시 6·25전쟁에 참전해야 했다. 그 결과 1952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에 의하면 당시 제주도의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약 2배나 많은 것으로 집계된다. 긴 시간에 걸친 폭력 속에서 살아남은 제주 여성들은 일상을 재건하기 위한 노동까지 짊어져야 했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고통의 기억은 쉽게 언어화되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아 지금도 할머니들과 후손들의 기억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마지막으로 감독은 제주 4·3 추모 공원을 찾는다. 이 장소에는 한 화면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많은 묘비가 세워져 있으며, 다른 한켠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추모비에 빽빽하게 적혀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명단에는 ‘무명’의 이름이 가득하다. 무연고 시신이 그만큼 많은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겠으나, 자세히 보면 이 명단에는 유독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이란 표현이 많다. 사망 후에도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한 이 미완의 리스트는 공적인 역사를 기억하는 과정에도 여성이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음을 증언한다.



<목소리들>이 안겨주는 질문 <목소리들>의 다큐멘터리적 성취는 단순히 제주 4·3의 구체적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영화가 끝나도 관객의 기억에 오래 남는 건 특정한 정보가 아니라 카메라 앞에 선 고정자, 김용연, 김은순, 홍순공 할머니의 표정과 눈빛일 가능성이 높다. 1948년 당시 7세였던 김용연 할머니, 당시 16세였던 고정자 할머니 등 인터뷰이들의 기억 속 제주 4·3은 저마다 다르지만, 증언을 하는 태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증언을 망설이거나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는 할머니들의 말로 이루어진 구체적이고 풍부한 증언보다는, 망설임과 눈물의 순간이 더 오래 기록되어 있다. 제주 4·3을 직접 겪지 않은 인터뷰이들(주로 할머니들의 자녀이며, 50~60대로 보인다)은 비교적 차분하게 자신이 보고 들은 일들을 카메라 앞에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도 생생하게 제주 4·3을 기억하는 할머니들은 그냥 가만히 있거나, 짧게 말하거나, 눈물을 흘릴 뿐이다. 영화에는 그리 길게 등장하지 않는 이 장면들은 증언의 (불)가능성에 관한 까다로운 질문을 우리에게 남긴다. 분명 제주 4·3은 기억되어야 하는 역사이며, 이를 위해 더 생생하고 더 구체적인 증언이 필요하지만, 유일하게 증언이 가능한 생존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제대로 말로 옮길 수 없는 상태다.

이 곤란한 상황 속에서 <목소리들>이 취하는 두 가지 방법, 혹은 태도는 존중할 만하다. 하나는 그들의 침묵 앞에서 기꺼이 카메라를 내려놓는 것이다. 특히 제주 4·3 당시 언니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김은순 할머니는 카메라 앞에서 말 대신 한숨만 쉰다. 이때 카메라와 인터뷰어는 끈질기게 답을 기다리는 대신 먼저 카메라를 뒤로 빼고, 잠시 기다린 뒤 촬영을 중지하는 쪽을 택한다(또는 촬영한 분량을 영화에 담지 않는다). 이는 분명 할머니들이 긴 노력 끝에 겨우 아물게 한 상처를 억지로 덧나게 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런 태도였을 것이다. 깊숙이 묻어 둔 기억을 떠올리고 언어로 기록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더 긴 시간과 강한 용기가 필요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방법은 언어화가 될 수 없는 이미지 차원의 증언을 카메라로 불완전하게나마 기록하는 것이다. 마치 인서트 숏처럼 삽입된 김은순 할머니의 약봉지가 대표적인 예로서, 우리는 현재 시점에서 기록된 일상의 작은 사물을 통해 당시 10대 여성이 받았던 충격과 할머니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어땠을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알고 있었던 마을의 돌담을 보여주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제주 4·3 이후 남성 인구가 급감한 제주에서 무거운 돌을 직접 하나씩 쌓으며 고된 삶을 이어 나간 여성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에 새로운 의미를 덧댄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제주도의 풍경과 환경은 이미 70여 년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생존자들이 조금이라도 당시 상황을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 때 제주 4·3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일은 분명 필요하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조정희 제주4·3평화재단 기념사업팀장은 이 작업을 거의 20년간 이어 온 성실한 연구자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을 구성하는 객관적 자료와 통계, 검증된 증언뿐 아니라 공식적인 역사를 기술하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침묵과 눈물, 방바닥에 놓인 약봉지 같은 것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럴 때만이 어둠에 덮여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고 좀 더 진실에 가까운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목소리들>이 사망자뿐 아니라 여성 생존자의 이야기에도 주목한 것처럼 말이다.

영화의 후반부, 감독은 백사장의 발자국이 파도에 지워지는 풍경을 의미심장하게 보여준다. 부드러운 모래 위로 사람이 지나가면 발자국은 잠시 동안 선명하게 그 자리에 남지만, 파도가 몇 번 지나가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역사의 기록이 어떤 성격을 갖는지 명백한 시각적 비유로 설명하는 이 장면은 <목소리들>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역사’는 거기에 그대로 있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의해 조금씩 사라져 간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오래된 기억을 어떻게 기록하고 남겨야 할지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목소리들>은 그 고민의 과정에 중요한 참고 사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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