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PEOPLE ❷

“재미가 없으면 바꿔야 한다”

스튜디오N 권미경 대표

글 _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_ 이승재(한국경제매거진 기자)

2025-04-16

스튜디오N 권미경 대표는 20여 년간 한국영화 업계에서 중요한 성취를 이룬 영화인이다. CJ ENM 영화사업본부장으로 <명량> <베테랑> 같은 ‘천만 영화’를 탄생시켰다. 2018년 CJ ENM을 떠나서 네이버웹툰의 자회사인 스튜디오N으로 옮겨 갔을 때, 그 발걸음에 의문을 품은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코로나19 시기를 통과하면서 스튜디오N은 이름도 낯선 신생 회사에서 네이버웹툰 지식재산권(IP)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 영상 콘텐츠의 주요 제작사가 되었다. <여신강림> <스위트홈> <유미의 세포들> <그 해 우리는>이 모두 스튜디오N의 작품이다. 2024년 하반기부터는 <정년이> <중증외상센터> <멜로무비>까지 더 강력하고 글로벌한 히트작들을 내놓고 있다. 올해는 드디어 극장용 장편영화까지 대기 중이다. 모두가 숨죽이던 시기, 엔데믹 이후를 꿈꿨다는 권미경 대표의 포부는 다양한 포맷으로 뻗어 나가는 웹툰 IP처럼 넓고, 한국영화를 향한 애정과도 맞닿아 있다.

강력하고 글로벌한 히트작들을 통해 한국 영상 콘텐츠의 주요 제작사로 자리매김한 스튜디오N



Q지난해 하반기 드라마 <정년이>와 올 상반기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멜로무비>가 각각 국내외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스튜디오N의 지속적인 활약과 성과가 눈에 띈다.

여러 사람들의 노고가 좋은 시기에 잘 발화되었다. 지난 몇 년간 영화•드라마 업계에 코로나19가 준 영향이 컸다. 그런데 우리는 코로나19 시기에도 위축되지 않고 똑같이 기획 개발을 했다. 그 성과가 지금 나와주고 있다. 아마 우리가 긴축했더라면 지금 작품을 내놓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우리가 네이버웹툰의 자회사이다 보니 네이버웹툰의 지원으로 큰 여파 없이 온고잉 할 수 있었다. ‘분명 팬데믹의 끝이 보이는 시기가 있을 거고, 다들 기획 개발을 줄이기만 하면 나중에 작품이 없어서 어떻게 할 건데?’ 그 생각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이건 지금의 한국영화계와도 연관 있는 얘기다. 코로나19 시기에 너무 기획 개발을 안 했기 때문에 지금 한국영화 산업의 문제가 생겨났다. 과감하게 업계를 내다보는 사람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Q웹소설 IP 기반인 <중증외상센터>의 성공이 낳은 여러 효과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웹소설과 웹툰 IP를 다루지만, 오리지널 작품도 하고, 일본 원작의 리메이크도 하고 있다. 원천 IP가 무엇인가보다는 그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재미있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 <중증외상센터>는 웹소설로 시작해서 웹툰도 만든 IP다. 웹소설과 웹툰 양쪽에서 소비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된, 산업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맺게 된 경우다. 원작 웹소설 작가가 의사이면서 유튜버라는 점도 작품을 알리는 데 잘 맞았다. 웹소설 작가도 이렇게 잘될 수 있다는 좋은 선례를 업계에 남겼다고 생각한다. 웹소설이 중요 원천 IP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분들이 웹소설과 시리즈를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고. 양측이 다 좋은 결과였다.

Q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중증외상센터>의 시즌 2는 진행되나?

시즌 2의 결정권이 넷플릭스에 있어서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긍정적으로 이야기가 오가는 중이다.

Q<멜로무비>는 <중증외상센터>와 완전히 다른 결로 사랑받았다. <그 해 우리는>에 이어서 스튜디오N의 오리지널 IP인 동시에, 그 내용이 한국 영화인들을 자극했다. 요즘 세대의 눈으로, 이렇게 무해한 감성으로,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시리즈는 없었던 것 같다.

<멜로무비>는 이나은 작가의 장점이 잘 살아 있다. 무엇보다도 글이 좋았다. 대사와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매우 좋은 분이다. <동백꽃 필 무렵>의 임상춘 작가 이후로는 이렇다 할 정도로 라이징하는 작가가 없었는데, 이나은 작가는 내공을 보여줬다. <멜로무비>의 스토리 전개는 창작의 영역이기에 간섭하지 않았다. 영화 쪽에서 일을 해봤으니, 상황 설정의 가능 여부 정도는 코멘트했던 것 같다. 작가의 주변에 나를 포함해서 이미 영화 쪽 사람들이 많았다. <멜로무비>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가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

<중증외상센터>와 <멜로무비>가 연달아 공개되었는데, 둘 다 우리 회사 작품인 게 조금 난처했다. <중증외상센터>가 워낙 잘되어서 그 반응이 <멜로무비>에는 부담일 수 있었으니까. 결국 결이 다른 형태로 두 작품 모두 많은 사랑을 받게 되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그때 tvN에서도 우리 작품인 <그놈은 흑염룡>이 방송되고 있었다. 영화를 할 때도 이런 경험은 없었는데, 내 생애 최초로 세 작품이 동 시기에 공개되었다. 한 주 내내 행복했다.(웃음)

Q<정년이>는 1950년대 배경의 한국 여성 국극을 소재로 큰 화제가 된 가운데, 팬덤이 강력한 만큼 드라마 각색에 대한 찬반을 불러일으켰다. 웹툰 IP를 다른 형태의 콘텐츠로 각색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스튜디오N이 생각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그 방안은 재미다. 재미가 없으면 바꿔야 한다. <정년이>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대본 개발을 꽤 오래했다. 각색 과정에서 권부용 캐릭터를 없애는 것에 대해서 여러 논의를 했다. 권부용은 국극단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활약하는 캐릭터다. 웹툰에서는 충분히 표현이 되었지만 드라마에서는 동선의 이동과 신의 구성으로 봤을 때 캐릭터가 들어올 개연성이 떨어졌다. 그래서 권부용 캐릭터를 극단 내부의 캐릭터들에 나누어 각색해 놓았는데,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스포일러가 되는 상황이니까. 방송이 되고 나면 다 이해하게 될 거라는 마음이었다. 지금 다시 <정년이>의 기획 개발 당시로 돌아간다면 권부용 캐릭터를 없애겠느냐고 했을 때, 나는 또 그럴 것 같다. 그 선택으로 이야기의 몰입감을 더 살렸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버린 것이 아니며, 그녀의 캐릭터를 다른 캐릭터들이 나눠 가지면서 이야기의 풍부함이 이어졌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각색에 있어서 원작과의 차이를 극복하는 방안은 역시 재미다. 그 재미를 위해서 <정년이>를 지금처럼 각색했다.

Q<정년이> <중증외상센터> <멜로무비>까지, 2018년 스튜디오N 대표가 된 지 10년도 안되어서 이룬 성과다. 웹툰 IP, 미디어 산업에 대한 개인적인 비전이 어느 정도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CJ ENM에서 10년 근무했고, 영화 사업 본부장으로 5년을 일했다. 1년에 12편씩 영화를 개봉시키면서 달렸다.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 만큼 휴지기가 필요했을 때 네이버웹툰의 오퍼를 받았다. 네이버웹툰 김준구 대표의 “저는 ‘천만 영화’보다 ‘좋은 영화’가 좋아요”라는 말이 나를 움직였다. ‘천만 영화’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매년 ‘천만 영화’에 대한 압박에 굉장히 시달렸기 때문에 그 말의 울림이 컸다.

그 시기에 IP에 대한 비전이 구체적이었던 건 아니다. 다만 영화 업계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에, 이야기의 원동력에 대해서는 늘 생각했다. 이미 할리우드영화나 일본영화들은 도서나 만화 원작이 영화의 근간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웹툰이나 웹소설이 일반 소설이나 만화책과 뭐가 다른 걸까. 디지털로 서비스되는 것 말고는 근본적으로 같은 이야기 아닌가. 그래서 스튜디오N으로 옮기기로 마음 먹었다. 처음에는 다들 낯설어 했다. 인사차 전화를 돌리면 뭐 하는 회사냐, 왜 갔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웹툰은 콘텐츠의 인문학적 소양도 부족하고, 화장실에서나 보는 거 아니야?”라고 말한 감독도 있었다. 그런데 2년 전에 그런 감독들 가운데 한 분이 전화해서 “권 대표, 내가 할 만한 거 없을까?”라고 물었다. 세상이 변한 것을 실감했다.

Q스튜디오N 대표가 되면서 모회사인 네이버웹툰 김준구 대표에게 3년만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안다. 무엇을 위한 3년이었나?

기획 개발을 위한 3년이었다. “3년 동안 돈을 못 벌어도 뭐라고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하니 “3년이고, 5년이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라는 답을 들었다. 3년 만에 스튜디오N이 턴어라운드를 했다. 오너가 사업적인 시각만 가졌다면 기다리기 어려울 수 있다. 법인으로서 계속 마이너스가 나는 사업을 끌고 갈 수는 없으니까. 우리에겐 콘텐츠에 애정이 있는 오너의 장점이 분명히 작용했다.

3년 후에는 업계에서 메이저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포부도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우리 회사 이름을 설명하기에 바빴는데, 이후에는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게 3년 만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영화주간지 씨네21에서 연말에 매년 주목받는 제작사들 리스트에서 5위 안에 있게 되었다. 채널이 있는 스튜디오들, 그러니까 tvN의 스튜디오 드래곤, JTBC의 스튜디오 룰루랄라 외에 채널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왕성하게 활동하는 스튜디오로서 스튜디오N이 꼽힌다. 이제 우리의 다음 목표는 역시 글로벌이다. 미국 진출까지는 아직이지만, 아시아에서 잘하는 스튜디오까지는 되고 싶다는 게 내 욕심이다. 그래서 글로벌 프로젝트들도 진행 중이다.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제작사들과 논의 중이다.

일본의 경우는 네이버웹툰을 라인망가로 서비스하기 때문에 라인망가 안에 ‘스튜디오엔 재팬’이라는 태스크포스(TF)팀을 뒀다. 그 팀 안에 라인망가 직원과 스튜디오N 직원이 들어가 함께 논의하는 형태다. 우리가 JTBC와 같이 만든 드라마 <알고 있지만>은 일본에서 리메이크했다. SLL과 우리가 일본 제작사와 함께했는데, 일본 넷플릭스에서 지난해 12월 공개했다. 토에이 애니메이션과는 <고수>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플랫폼 논의 단계에 와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작품도 많지만 사건 사고도 많아서 힘들어 죽겠다.(웃음) 2028년이면 스튜디오N 대표가 된 지 10년이다. 앞으로 3년 후에는 또 어떻게 변화할지 나도 궁금하다. 채널이 없는 제작사로서 어려움은 있지만, 글로벌 프로젝트에서 아웃풋이 나온다면 또 다른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Q네이버웹툰의 스펙트럼이 넓어서 어떤 웹툰을 어떤 형식으로 영상화할지 내부 논의도 치열하겠다.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의 과정을 거치나? 프로듀서(PD)들이 꼭 밀고 싶은 작품의 영상화를 주장할 수 있는 ‘슈퍼 패스’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 회사 슬로건이 ‘펀 오어 나싱(Fun or Nothing)’이다. 재미있으면 하고 재미없으면 안 한다. 물론 재미라는 개념은 각자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그 포인트를 담기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꼭 회의를 한다. 회의를 통해서 이 작품을 개발할 거냐 말 거냐, 장단점에 대한 논쟁을 한다. 과반수가 넘는다고 무조건 개발하는 것도 아니고 과반수가 안 된다고 무조건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슈퍼 패스’라는 제도를 활용한다. 내가 CJ ENM 본부장으로 있을 때 작품 개발 결정을 늘 다수결로 했는데, 담당자들의 불만이 많았다. 잘될 수 있는 작품을 알아봐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회사에 허락을 받아서 일종의 ‘슈퍼 패스’를 주겠다고 했는데, 두 팀장이 다음 날 와서 안 하겠다더라. 책임 소재 문제를 어려워하며 거절하는 게 안타까웠다. 스튜디오N에서는 내가 대표이니 ‘슈퍼 패스’를 실행할 수 있었다. PD들에게 ‘이 작품은 성공할 거야’라는 믿음이 있다면 지지해주겠다고 했다. 콘텐츠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 않아야 오히려 대박이 난다. 주변에선 ‘슈퍼 패스’가 너무 남발되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다들 자신의 커리어가 달려 있고 신뢰 문제가 있어서 ‘슈퍼 패스’를 쉽게 못 쓴다.

기획 개발은 못해도 2~3년이 걸리는 장거리 달리기다. 의지가 없으면 그 장거리를 완주할 수 없다. 의지가 엄청 강한 친구가 있다면 대표로서 반드시 서포트를 해줘야 한다. 그게 ‘슈퍼 패스’의 역할이다. 우리 회사는 톱다운이 없다. 내가 좋게 본 작품이라도 직원들이 좋게 보지 않았으면 기획 개발을 못 한다. 나는 큰 조직에서 프로젝트가 톱다운 되었을 때 얼마나 엉망으로 굴러가는지 봤기 때문에 더더욱 원치 않는다. 직원들이 오히려 내게 정말 원하는 아이템이 없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제발 이 작품은 개발해주면 안 되겠니”라고 비는 편이다.(웃음)

Q내부의 기획 개발 인력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총 16명의 PD가 있다. 그 가운데 4명이 제작 PD와 기획 PD 역할을 겸하고 있고 12명은 기획 PD다. 그 12명 중에 한 명인 차세리 PD가 홍보 마케팅과 스태프 역할까지 하면서 기획 PD로서 작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 일은 제작 현장에서만 일하는 것보다 직접 아이템을 개발해야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다. 그래서 기획은 모든 PD에게 열려 있다. 총 16인의 PD가 못해도 각각 네다섯 편씩 작품 개발을 한다. 우리 회사는 수평 조직이기도 하다. 40대 후반의 여자, 30대 초반의 남자 등등 PD들의 나이와 연령이 다르고 각자 독립적으로 작품을 개발하기 때문에 모두 포트폴리오가 다르다. 워킹 타이틀이나 블룸하우스처럼 색깔이 확고한 제작사들도 있지만 스튜디오N은 백화점 혹은 학교 앞 문방구처럼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을 갖춰 놓고 있다. 재미있는 문방구, 한 번 들어오면 계속 노느라고 못 나가는 문방구로 만들고 싶다.

Q오랜 경력의 영화인이자 콘텐츠 마니아다. 평소 웹툰, 웹소설을 어느 정도 소화하나?

나는 웹툰 세대가 아니라 만화책 세대다. <신과 함께>를 롯데 엔터테인먼트에서 배급했지만 기획 개발은 CJ 엔터테인먼트가 했는데, 당시 원작 웹툰은 봤다. 즉, 원작과 ‘관련 있는’ 웹툰을 간혹 본 정도였다. 그러다가 스튜디오N에 왔더니 웹툰과 웹소설도 유명 감독이나 배우처럼 유명 작가들이 있고 영화 박스오피스처럼 어느 정도 랭킹이 있었다. 처음에는 따라가기 어려웠다. 그런데 일주일마다 약 3편의 웹툰, 웹소설 회의를 한 지 7년이 되었고, 1년이 52주인 걸 감안하면 나도 1000편이 넘게 웹툰, 웹소설을 본 셈이다. 베스트 댓글도 다 확인한다. 그야말로 많이 본다. 물론 내가 영화에 대해 알고 있는 수치와 데이터 지식보다는 약하겠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웹툰, 웹소설 작가들의 이력과 전작, 스타일을 얘기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요즘 어떤 작품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묻는 주를 기준으로 해서 매번 다르다. <좀비딸> <연의 편지> 같은 작품은 웹툰 자체로도 훌륭한 원작이기 때문에 꼭 한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좀비딸> 이윤창 작가의 <네이쳐맨>도 좋아 하는 작품이다.

웹툰 <연의 편지> 출처: 네이버웹툰

웹툰 <좀비딸> 출처: 네이버웹툰



Q스튜디오N의 올해 차기작들 가운데 한국영화로서 중요한 시도로 보이는 두 작품이 있다. 앞서 언급한 웹툰 원작들로 만든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연의 편지>와 장편영화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이하 <좀비딸>)이다.

애니메이션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한국 애니메이션을 위한 시장이 크게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늘 아쉬웠다. 그런데 웹툰 <연의 편지>는 그 이야기와 정서만 잘 옮겨도 좋겠다고 생각될 만큼 작품 자체가 매력적이었고, 10화 분량의 짧은 웹툰이라서 시리즈 대신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가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2차원(2D) 애니메이션의 제작비도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하지만 투자 배급사를 찾기는 어려웠다.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산업적 의문들이 많았기 때문인데, 고맙게도 롯데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를 결정해주었다. 그 이후 오랜 기간 작업해서 완성했고, 지난해부터 초청된 영화제마다 상을 받고 있다. 지난해 부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기도 했다. 나는 다른 회사 작품에는 관대한 반면 우리 회사 작품에는 인색한 편이다. 그런데 <연의 편지>는 꽤 자신 있다. 누구나 생각하는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다. 내가 좋아하는 웹툰이 장편 애니메이션으로서 완성도 있게 나와서 뿌듯하다. <연의 편지>는 다른 회사와 함께 시리즈로도 논의하고 있다. 하나의 뿌리가 두 개의 IP로 확장되는 셈이다.

Q지난해 <사랑의 하츄핑>과 올해 <퇴마록>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어떤 기준선을 넘어주었는데, <연의 편지>는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해진다. <좀비딸>은 여름을 기대한다고?

<좀비딸>은 스튜디오N이 내놓는 사실상 첫 오리지널 극장용 장편영화다. 물론 우리가 이전에 내놓은 극장용 장편영화가 있긴 하다. 웨이브 오리지널로 만들어진 박진표 감독, 신혜선 주연의 <용감한 시민>과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의 극장판인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다. 하지만 <용감한 시민>은 웨이브가 메인이고 극장 개봉이 플러스 알파인 형태였다.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도 이전에 드라마가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오리지널은 아니었다. 그래서 올여름 개봉 예정인 <좀비딸>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극 중 좀비딸의 아빠는 애초에 조정석 배우를 놓고 쓴 캐릭터다. 조정석 배우가 대본을 보고 “이거 완전 난데?”라고 했다더라. 티빙 시리즈 <운수 좋은 날>의 필감성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운수 좋은 날>에 출연했던 이정은 배우를 좀비딸의 할머니 역할로 모시게 되었다. 이정은 배우와 조정석 배우는 예전에 함께 연극을 했던 사이다. 또 이정은 배우와 <기생충>에 함께 출연하고 아카데미 캠페인까지 함께했던 조여정 배우가 좀비딸 아빠의 첫사랑 교사로 출연한다. 다들 친해서 현장 분위기가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결과도 그랬으면 좋겠다.

Q<좀비딸>을 통해서 바라는 산업적인 목표도 분명할 것 같은데?

지금 한국영화는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약 50% 정도 회복했지만 다른 나라들은 70, 80%까지, 많게는 90%까지 회복했다. 한국영화가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이유는 결국 한국영화 업계의 잘못이다. 코로나19 때 기획에 들어간 것도 없고, 촬영한 것도 없고, 찍어 놓은 것도 안 푸는 바람에 관객들의 극장 가는 습관이 끊겨 버렸다. 관객들이 극장 관람의 습관을 다시 되찾게 하려면 계속 한국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투자배급사들의 상황을 보면 그럴 것 같지 않아서 걱정이다. <좀비딸>이 사람들을 극장으로 가게 하는, 극장 가는 습관을 다시 만들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한국에서 이렇게 잘된 것은 사실상 한국영화가 튼튼했기 때문이다. 스태프이든 감독이든 배우든 다들 영화 제작이 힘들어지니까 OTT 시리즈로 옮겨 갔지만, 영화 시장을 버릴 건 아니지 않나. 국가의 미래를 봐서도 한국영화의 회복과 성장을 위해 다들 각성하고 노력해야 한다. 한국영화가 신인 배우, 신인 감독을 발굴하지 않으면 결국 OTT에도 좋은 인력이 없어지게 된다. 늘 일하던 사람들만 일하면 수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영화가 계속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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